나에게 있어서 편지를 씀에 있어서는 허투루 하는 법이 없다.
그렇기에 다 쓰기까지 늘 오래 걸린다.
편지를 쓴 날들이 여럿 되지만, 오랜만에 쓰게 된 이번 편지는 조금 달랐다.
과거, 관계들로부터 받은 꾸준한 상처들 덕분에 나에 대한 것도 타인에 대해서도 세심한 감성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변함없이 편지 쓸 때만큼은 늘 진심을 다했는데, 성인이 되고 쌓인 과거만큼 세심함이 더 깊어진 것이 오랜만에 쓸 편지를 준비할 때에서도 나타나 내 스스로 약간 놀랄 정도였다.
오랜만에 쓰는 편지를 준비하는 과정은 이러하다.
_편지지는 반드시 두께감이 있어야 한다.
_관계에 거리가 있는 수신자에게 부디 나의 깊은 진심이 잘 전달되기를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어 꾸밈없는 편지지가 나을 것 같았다.
_편지 봉투만 파는 상품보다 편지지와 같이 들어있는 편지 봉투가 더 바람직했다.
_편지와 함께 작은 선물을 넣을 포장지 혹은 담을 종이가방은 꾸밈없는 것으로 해야 받기에도 버리기에도 부담이 적을 것이다.
고민의 고민을 거듭해 구매했는데 문제는 편지지의 두께가 너무 얇았다.
이럴 땐 보통 2장을 덧붙일 때도 있는데 구매한 편지지는 두 장을 겹쳐 빛에 비추어 봤을 때 줄눈이 제대로 겹치지 않아 여러모로 쓸 수 없었다. 그래서 가지고 있던 노트 중 가장 적합한 것을 골라 재단하여 편지지로 사용했다.
나는 편지를 쓸 때 평소의 휘갈기는 글씨체가 아닌 바르고 또박또박 쓰며, 잘못 적었을 때는 화이트나 찍찍 긋는 것이 아닌 새 편지지에 처음부터 다시 쓰는 타입이다. 화이트를 안 쓰는 이유는 시간이 지나 나시 보게 되었을 때 바래져 아래가 비치거나 때어지거나 지저분해지니까. 온전히 깔끔하게 전달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주로 편지지에 곧장 쓰지만 이번 수신자에게는 마음과 신경을 더 쓰며 공들여야 했기에노트북에 생각을 풀어쓴 뒤 오랜 시간 퇴고를 통해 정리 정돈한 글을 편지지에 옮기고, 또박또박 바르게 쓰기 위해 속도가 대폭 줄어드니 이 모든 것을 종합하니 그렇게 나의 수면시간은 1시간 40분이 되었다.
편지를 다 썼는데 '아 이 말도 넣을 걸' 싶었지만 과유불급이라. 그래. 이건 말로 전달하자 싶어 핸드폰에 '잊지 말고 분명히 말할 것'이라는 제목의 노트를 만들어 남겨두었다.
.
.
내가 상대방에게 연락을 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만나기 위해서는 매시간 나와 계속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무언가를 전하고자 날짜를 정해 만남을 의도할 때는 다짐한 순간부터 심장이 쿵쿵 뛴다.
전날은 물론 당일에는 심장 터질 것 같다.
내가 만날 상황을 미리 상상해 보아도, 뜻을 계획해 보아도 이를 비웃듯 뭉그러지고 상처받는 날이 허다했기에 이번에는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최대한 만남에 대한 기대와 상상에 대해 머리를 비웠다는 점이다.
............... 없다. 없다. 없다.
기다림의 장소에서도 대기하는 동안의 장소에서도.
.. 나 엄청 많이 공들였는데... 진짜 단단히 준비했는데.
지난주는 나의 멍청함으로 인해 일주일을 기다렸다.
이번에는 구멍을 막았다고 생각했는데 또 다른 구멍이 있었나 보다.
..
나의 어제, 나의 새벽, 나의 기다림, 나의 마음이 이리 허무하게 막을 내려버림에 괴로웠다.
그리고 매우 쏟아지는 지침과 피곤함.
-
야, 우리 당장 앞만 보지 말고 멀리 보자.
훨씬 더 좋은 때가 있어서 그래.
허무하게 흘러가버린 게 아니라 저 뒤에 빌드업되고 있다고.
그렇게 오늘도 난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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